헤어 드레싱 개척한 ‘가위의 황제’
1928년 유대인 부모 아래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그의 삶은 한마디로 도전과 혁신으로 점철된 드라마틱한 삶이었다.
사순은 바람난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유대교회가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지내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커서는 동료 부대원의 40%가 전사할 정도로 치열했던 1948년 제1차 중동전쟁에 이스라엘군으로 참전했고, 나중에 유대인 탄압과 배척을 연구하는 비달 사순 국제연구소(SICSA)를 설립하기도 했다. 거친 삶을 살았던 그가 세계 헤어 디자인계의 상징으로 우뚝 올라선 데에는 몇 번의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런던의 빈민가 이스트엔드에서 태어난 그는 모친이 한때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그를 포르투갈과 스페인 보육원에 맡기는 바람에 보육원에서 6년을 지냈다.
14세가 되어서야 다시 런던에서 부모와 함께 살게 됐다. 본래 꿈은 축구 선수였지만 모친은 “기술이라도 배워먹고 살아야 한다. 이발사가 돼라”며 강제로 아들을 미용실로 끌고 갔다. 고된 생활이 힘들었지만 당시 중동전쟁에 참전했다가 살아 돌아온 직후였던 그는 모친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훗날 그는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어머니”라고 말했다.
재정적으로 힘든 유년기를 보낸 사순은 1954년 런던에 그의 첫 가게를 냈다. 비달 사순은 당시의 헤어 트렌드와 정 반대되는 정교한 ‘보브 커트(Bob Cut)’를 야심차게 내놓으면서 기하학적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사순 커트(Sassoon Cut)’를 창시, 인기 헤어 디자이너의 반열에 올랐다. 이전까지의 정형화된 헤어스타일 대신 독특한 커트를 선보이며 ‘가위의 황제’라고 불렸다.
세계적인 강연자 켄 로빈슨은 세계 각국의 성공한 사람들을 인터뷰해 2010년에 내놓은 책 「엘리먼트」에서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비달 사순의 성공 뒤에는 엄청난 노력이 숨어 있다”고 했다.
미용사 초년병 시절 사순의 눈과 마음은 늘 런던의 최고 부자 동네인 웨스트엔드를 향했지만 사투리가 문제였다. 고민 끝에 그는 고객들이 준 팁을 모아 연극 구경을 다니면서 배우들의 대사를 따라 하면서 발음을 교정했다.
그의 또 다른 학교는 런던의 미술관과 박물관이었다. 사순은 시간이 날 때마다 미술과 건축을 접하며 예술적 영감을 얻는다.
그리고 마침내 1954년, 꿈에 그리던 런던 웨스트엔드에 자신의 미용실을 처음으로 열었다. 그가 미용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다.
1950년대 여성들의 헤어스타일은 대부분 머리를 돌돌 말아 높이 틀어 올린 ‘부푼 머리’였다. 그 머리를 유지하기 위해 여성들은 매일 밤 머리를 돌돌 마는 기구인 ‘컬러’를 착용한 채 잠들었고, 일주일 마다 한 번씩 미용실에 가야했다.
사순은 1960년대 중반 어느 날, 한 여성이 급하게 머리를 깎고 드라이어와 브러시로만 말리는 것을 보고 ‘(물로) 적시고 (가위로) 자르면 끝’인 헤어스타일을 떠올렸다. 그는 세계 각지의 건축에서 헤어 스타일의 영감을 얻곤 했는데 그의 헤어 연출법은 바로 머리감기, 자르기, 드라이하기 이렇게 3단계로 진행됐다.
이후 그는 머리를 다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단발머리 스타일의 보브(Bob) 커트, 귀 부분을 드러내면서 잘라낸 머리끝이 5곳이라서 ‘파이브 포인트 커트’로 불리는 헤어스타일을 선보이는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사순의 보브 커트는 기하학적인 모양의 짧은 머리로도 여성이 충분히 섹시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여성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머리 손질에 여성들은 긴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컬핀과 롤러는 옷장 속에 처박혔다. 여성들의 삶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고 옷을 입은 뒤 바로 외출하는 여성들이 늘어났다.
여성의 헤어스타일이라고는 곱슬머리나 올린 머리가 전부였던 당시, 사순이 내놓은 보브 커트는 여성 해방 조류와 맞아떨어지면서 전 세계로 퍼졌다.
영국 BBC는 이를 두고 “1960년대의 혁명적인 헤어 커트”라 평했다. 이로써 그는 일약 미국과 유럽을 풍미하는 헤어스타일 유행의 대명사로 각인됐다.
1993년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순은 “당시 여성들은 직업전선에 뛰어들기 시작해 의자에 앉아 장시간 머리를 손질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미용 모토는 ‘가위로 머리끝을 자르는 예술을 지향한다’였고, 그의 좌우명은 ‘군더더기를 버려라’였다. 그의 이런 미용 철학은 1960년대 당시 여성들이 직장에 뛰어들면서 빠른 머리 손질을 원했던 시대적 흐름과도 맞아떨어졌다.
사순의 절친한 친구인 영국 헤어 스타일리스트 니키 클라크는 “사순은 헤어 롤러와 백코밍(모발을 거꾸로 빗질해 부풀리는 것) 속에서 살던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것을 제안했다”며 “그는 어떤 면에서 60년대 스타일을 정의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적 헤어스타일 개척한 헤어 드레서
그를 세계적 헤어 디자이너로 만드는 데에는 두 명의 여성이 있었다. 1960년대 미니스커트 돌풍을 일으켰던 영국의 최고 패션 디자이너 메리 퀀트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대표작 <로즈메리의 아기>에 주연으로 나왔던 유명 여배우 미아 패로였다.
이 두 사람이 사순의 보브 커트를 하면서 사순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로즈메리의 아기>를 감독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사순에게 패로의 머리를 깎게 하면서 5천 달러를 지불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순의 단발머리는 시대의 조류였던 ‘여성 해방’의 흐름과 맞아 떨어져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수많은 ‘오피스 걸’들이 그가 창안한 단발머리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그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개개인의 얼굴 윤곽을 고려한 단순하면서도 섬세한 헤어스타일을 개발하면서 존 갈리아노, 미치코 코시노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카트린 드뇌브, 신디 로퍼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 작업했다.
그의 관심은 머리 모양에만 머물지 않았다. 1965년 미국 뉴욕으로 활동 무대를 옳긴 뒤에는 ‘비달 사순’이란 브랜드로 샴푸, 헤어 컨디셔너 등 각종 헤어 용품을 출시해 큰 인기를 모았다. 비달 사순 샴푸는 우리나라에서도 팔린다.
1969년 첫 헤어 스쿨을 연 이후 전 세계에 ‘비달 사순 헤어 스쿨’을 확대했고 말년엔 로스앤젤레스 교외에 미용학교를 열어 젊은이들의 육성에도 애썼다.
특히 영국을 떠나 1966년 미국 뉴욕에 처음 입성했을 때 뉴욕의 텃세를 뿌리치고 자신만의 헤어스타일을 고집함으로써 글로벌화에도 성공했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성공한 후에는 반유대주의를 깨는 운동에도 열심이었고 자선사업에도 나섰다.
그러나 사업은 하락세를 걸었다. 한때 사순이 운영하던 전 세계 업체의 매출은 4억5000만 달러를 넘긴 적도 있었지만 1985년 프록터 앤드 갬블(P&G)에 미용제품 사업을 넘기면서 매출은 서서히 줄었다.
2003년 사순은 미국 연방 법원에서 P&G사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내용은 "P&G는 회사의 다른 브랜드인 팬틴 등을 우선시하고, 비달 사순 브랜드를 소홀히 하여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양측은 심리의 개시를 기다리지 않고 화해했다.
비달 사순은 1970년대 초반 이주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줄곧 살아왔지만 영국 국적은 끝까지 유지했다. 2009년에는 세계 미용업계를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생일 때 ‘대영제국 커맨더 훈장(CBE)’을 받았으며, 2010년에는 그의 일생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비달 사순:더 무비(Vidal Sassoon: The Movie)>가 제작되어 개봉되기도 했다.
수십 년 전 헤어스타일리스트 경력을 중단한 이래 그는 극히 소수의 고객의 헤어 스타일링만 담당했다. “우리 집 강아지들은 기하학적 헤어 커트를 자랑하는 유일한 시추”라고 말한 그는 자신의 강아지를 매우 사랑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그는 평생 네 번 결혼했다. 말년에는 네 번째 부인 론다와 전처소생인 자녀 3명과 살았다. 자녀 중에는 헤어 디자이너가 없다.
<비달 사순 연보>
1928년 1월 17일 영국 런던 출생
1942년 보육원에서 런던으로 돌아와 미용사 견습생 생활 시작
1948년 제1차 중동전쟁 참전
1954년 런던 웨스트사이드 내 본드스트리트에서 미용실 개업
1966년 보브 커트, 파이브 포인트 커트 등 새 헤어스타일 선보임, 뉴욕 진출로 글로벌화 시동
1969년 헤어스쿨 첫 오픈
1973년 비달 사순 미용아카데미 오픈
1984년 '비달 사순식으로 커트하기' 등 3권의 저서 출간
1985년 샴푸 등 미용제품 브랜드, P&G에 매각
2009년 대영제국 커맨더 훈장 수상
2012년 5월 9일 84세로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