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고록(이은정)
나의 스승 그레이스 리 선생님과의 마지막 여행
글:이은정(미용계 대모 그레이스 리 선생의 수제자)
선생님께서 오시는 날
2009년 12월 12일에 나는 나의 지인들과 코타키나발루에 왔다.
오늘은 여기 온 지가 2개월째 되는 날이다. 서울에서 나의 스승 그레이스 선생님께서 오시는 날이라서 공항에 나왔다. 두 달 만에 뵙는데 가슴엔 설레임으로, 내 몸의 서성거림은 진정이 안 된다.
여행 때마다 느끼는 건 선생님께서는 거의가 맨 앞줄에서 일찍 나오신다는 것이다.
오늘은 다른 사람이 다 나왔는데도 나오시지 않으니 불안한 생각으로 마음이 초초해진다. 밤 비행기라서 벌써 11시가 넘어서 더욱 긴장되어 마음이 오그라든다. 내가 코타에 오기 전에 선생님은 위암 2기 진단을 받으셨다. 불안한 마음이 더욱 커져 신경이 온 몸을 긴장으로 마비 시킬 듯이 조여 온다.
아! 드디어 선생님의 모습이 보인다. 생각한 것 보다 건강해 보여서 안심했다. 나는 선생님 하고 달려가 품에 안겨 울먹였다.
“내가 너 이럴 줄 알았어!” 하시면서 “몸 컨디션 괜찮다.”고 안심 시키신다. 차에 오르신 선생님께서는 코타의 밤 분위기를 보시고 도시가 편안하게 느껴진다고 하셨다.
시장 보는 날
선생님과 아침에 시장을 나갔다. 코타엔 야채가 싱싱하고 과일은 달고 맛있다. 그리고 모든 과일이나 채소가 일 년 내내 있다는 것 망고나 망고스틱이 수가 줄어들고 비싸지면 가까운 주변의 나라에서 들여와 가격이 안정되어 소비자의 불편은 없다.
우리가 묵고 있는 집은 한국인 개인이 임대하는 단독 집이다. 테라스 앞에 커다란 부겐베리아 나무가 있는데 분홍색 꽃은 밝고 풍성한 자태로 사계절 향을 뿜어낸다.
집 입구에 들어오면 담장 옆에 감나무와 대추나무, 라임나무 등이 나란히 있어 외국 냄새가 안 나고 우리나라 시골 양옥집 같다.
상추와 망고, 망고스틱을 한 바구니씩 사고 선생님 좋아하시는 고기도 샀다. 물가가 싸고 싱싱하다고 너무 좋아하신다.
집에 와서 손수 주방에 들어오셔서 상추 겉절이를 하시는데 식초를 찾으시길래 집 담장 밑에 있는 라임나무에서 라임 몇 개 따다 드렸더니 깜짝 놀라며 좋아하셨다. 그날부터 재료가 신선하고 싸니 장보고 요리하시는 걸 즐거워하셨다.
수영장 가는 날
슈트라하버 호텔 수영장을 코타에 있는 동안 자주 갔지만 선생님 모시고는 오늘 처음 간다. 수영장에 도착하자 선생님은 환호를 하셨다. 누구라도 그럴만하게 아름다운 곳이다.
선생님은 수영장을 몇 바퀴 돌고 썬텐 준비를 하신다. 언제나 어느 나라에 가서도 수영보다는 썬텐을 즐기신다. 오일을 듬뿍 발라드리고 침대에 타올을 깔아 드렸다. 그때부터 나는 언제나처럼 수영을 마음껏 즐긴다.
호텔수영장에서 바다 쪽으로 가서 바다를 바라보며 수영을 하는 기분은 말로는 표현을 할 수 없다. 바다는 푸르다 못해 짙은 코발트색이다. 바다는 멀리 못 가고 푯대 쳐놓은데 까지만 간다. 조금 있으면 해가 바다로 숨는 시간이다. 선생님하고 함께 썬셋을 보려고 호텔수영장으로 올라갔는데 왜 그렇게 오래 있었느냐고 눈을 흘기신다.
오후 2시까지 수영하고 썬쎗을 보는 시간에는 와인과 맥주가 20% 디시다. 선생님은 그 시간을 엄청 즐기시는데 내가 어디 갔는지 모르시니 많이 기다리신듯하여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은 발에 모래 밟히는 걸 싫어하신다. 그래서 바다수영은 늘 나 혼자 했다. 우리는 침대를 바다 쪽으로 돌려놓고 와인을 즐기면서 또 노을을 바라보며 각자 무엇을 생각 했는지는 서로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순간 행복하면서도 가슴 저 밑에는 슬픔이 내려앉는다.
내년에도 아니 그 내년에도 선생님과 이런 멋진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무겁게 내 마음을 누른다.
마젤리나 호텔 총지배인에게 저녁 초대 받음
두 달 코타에 있는 동안에 수영장, 골프장, 키나발루 산을 주로 갔다. 그중에서도 마젤리나 호텔 수영장을 자주 갔는데 영국남자인 총지배인을 현지인이 인사시켜줬다. 갈 때마다 마주치면 인사를 깍듯이 하며 관심을 가져줘서 외식할 때는 마젤린으로 왔다.
마젤린으로 선생님과 처음 수영 오던 날에 지배인 데이빗 하고 마주쳐셔 나의 선생님이라고 인사를 시켰다. 둘이서 유창한 영어로 인사를 주고받는데 대화가 끊이지 않고 계속하셨다. 내가 말을 끊고 수영 끝나고 또 보자고 해서 겨우 끝났다.
오늘도 선생님은 썬텐만 하시고 나는 수영 끝나고 선생님과 함께 썬텐을 시작하며 이태리식 야채샐러드와 샌드위치를 시켜서 와인을 마셨다 선생님이 너무 행복하시다 말씀하시니 나도 함께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아름다운 저녁노을 바라보시면서, “캐티야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라고 담담한 어조로 말씀하신다.
나는 준비된 말처럼 “지금 이대로 관리만 잘 하시면 그냥 계속 사실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일부러 무심한 듯 대답했다. 이런 심각한 대화를 하기엔 하늘 전체의 수채화 같은 노을이 화려하고 멋져서 심각하게 들리지 않는다.
선생님께서도 그런 말씀은 하셨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우울하거나 무거운 표정이 아니셨다. 그때 “하이 캐티” 하며 데이빗이 나를 부른다. 좋은 일이라도 있는 듯 웃는 얼굴로 다가와서 선생님과 나를 번갈아 보며, 내일 디너에 자기가 우릴 초대하겠다고 하며 두 손을 들어 어깨를 들썩인다. 멋진 제스처와 서비스 맨의 상냥한 얼굴로 우리의 답을 기다린다. 선생님과 나는 눈을 마주치고 오케이를 동시에 유쾌하게 날렸다.
마젤린 호텔 디너에 초대받은 날
아침에 선생님께서 “캐티야 우리 오늘 뭐 입고 갈까?” 신나는 목소리로 내 단잠을 깨우신다. 나는 파티나 디너에 입고 나갈 의상을 준비하지 않아서 아예 선택할 여지가 없다.
내 사정을 들으시고 “아니야 그래도 그렇지 기분이 그게 아니고 예의도 아니다 얘” 하시면서 “오늘은 좀 일직 나가서 쇼핑을 하자”고 하신다.
나는 전혀 그러고 싶지 않은데 선생님 말씀이 맞으니 그동안 봐둔 쇼핑센터에 가서 디너분위기에 어울리는 옷을 샀다. 선생님은 실크로 된 화려한 드레스를 노브라로 입으셨다 나는 흰 쫄바지에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흰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었다. 화장품도 가져갔다. 옷과 화장을 갖추고 저녁을 먹는 건 코타에 온 후로 처음이다.
태양이 그 뜨거운 몸을 바다 저 끝에 조금씩 담고 있을 때 마젤린 호텔의 불빛은 하나둘 살아난다.
수영장을 정리하고 디너 테이블이 멋지게 디자인되어져 아름다운 저녁의 분위기로 변했다. 팡파레가 울려 퍼지고 음악이 연주가 시작된다. 그때 태양은 완전히 몸을 바다에 숨긴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왈칵 솟는다. 선생님께 들키지 않으려고 현장을 돌아보는 데이빗을 발견한 나는 “데이빗” 하면서 할 말이 있는 것처럼 그에게 달려가서 바다 쪽으로 몸을 돌려 데이빗 앞에 섰다. 내 눈을 본 데이빗은 무슨 일이냐는 듯 놀라는 눈빛이다. 나는 얼른 그를 끌고 바다 쪽으로 갔다 영문을 모르고 끌려온 데이빗에게 미안하다고만 하니 내 등을 토닥여 준다.
어쩌면 이토록 아름다운 밤은 선생님과 나에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감정 조절이 안됐다. 나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음악을 따라 데이빗의 손을 잡고 선생님 앞에 서서 웃고 있다.
오늘은 악단의 첫 노래가 ‘친구여’로 시작 한다. 그 다음은 혜은이 노래 ‘사랑해 당신을’이 나온다. 분명 데이빗의 선물이라고 우린 눈을 마주치며 데이빗을 보니 그도 우릴 보며 어깨를 들썩이며 제스처로 답한다.
와인으로 시작해서 스카치로 들어가 기분을 업 시키는데 데이빗이 다가와 어떠냐고 묻는다. 폭포 같은 칭찬을 해주니 선생님께 듣고 싶은 노래가 있느냐고 했다.
선생님은 베사메무쵸를 신청했다. 오우~를 하면서 악단에게 신청을 해줬다. 분위기는 호롱불의 하늘거림으로 이국의 낭만과 향수를 함께 가슴에 사르르 흘러들게 한다.
베사메무쵸를 들으면서 선생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나는 계속 음악을 들으며 감정조절이 안 돼서 술잔을 들고 선생님과 시선을 맞추지 않고 악단 쪽에만 눈길을 둔다.
코타의 밤은 꿈처럼 황홀하게 출렁이며 스승과 제자의 아픈 마음과 행복한 순간을 싸안고 깊어만 갔다.
오늘은 집에서 쉬는 날
햇볕이 너무 좋다. 여기는 먼지 하나 없는 세상이다 덥다가도 보슬비가 뿌려진다 싶으면 땅속으로 빗물은 바로 스며들어 길은 시원하고 나무들만 촉촉하고 꽃들은 생글생글 웃는 표정이다.
이불 베개를 모두 내다 밖의 햇살 위에 놓아두면 보송보송하니 예쁘게 살아난다. 선생님께서 “캐티야, 오늘 점심은 스테이크를 먹자” 하시면서 샐러드 재료를 내놓으신다. 언제나 야채 다듬어 씻는 건 내 담당이다. 선생님의 기막힌 손맛으로 잘 구어진 고기를 먹으면서 아껴 두었던 와인을 꺼내어 잔을 부딪친다. 파란하늘에 흰 구름이 웃어주는 코타의 선물 같은 한낮의 행복에 겨워 술기운은 꽃바람 태워 스승과 제자의 마음을 하늘로 두둥실 띄운다.
보루네오 골프장 가는 날
나는 한국에서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다. 12월에 코타에 온 다음날에 인도어 골프장에 와서 처음으로 골프채를 잡아봤다. 같이 온 사람들이 모두 골프를 치며 놀려고 온 사람들이라 내가 안 치면 그야말로 따로 놀아야 하게 생겼다. 모르고 온건 아니지만 아무튼 성화에 못 이겨 배운 게 어쩌다 골프, 냅다 골프를 치게 됐다. 선생님도 골프는 못 치신다.
우리는 골프를 치러온 게 아니라 소풍을 나왔다. 내가 와본 중에 코타에서는 보루네오 골프장이 제일 아름다웠다. 골프장도 아름답지만 잔디밭 저 끝에는 끝이 안 보이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오늘따라 해가 반짝 떴는데 비가 보슬보슬 내리니 무지개가 쌍으로 떠서 반원을 그렸다. 선생님과 나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지르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 내가 선생님을 만난 후 그런 모습은 처음 본다. 너무나 기분좋아하셔서 나도 흥분되고 우리는 아이처럼 기뻐했다.
지금처럼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마음속에만 그 아름다운 순간을 남기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쉽다.
그날 저녁 해가 바다에 몸을 숨길 때까지 선생님과 나는 말없이 무릎을 껴안고 지평선 끝을 응시하며 보루네오의 하늘에 하나 둘 반짝이며 돋아나는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여행이 선생님과의 마지막 여행인 줄 예견치 못하고 그렇게 침묵의 시간만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