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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잉크로 쓴 분홍』 출간한 강미정 시인
글쓴이 : 뷰티라이프 날짜 : 2024-06-20 (목) 15:46 조회 : 76


저자 초대석(강미정 시인)


일상 속에서 만난 당신과 나의 이야기

『검은 잉크로 쓴 분홍』 출간한 강미정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저는 경남 김해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맏이여서 동생들을 돌보며 부모님의 일을 도와야 했지요. 저녁밥을 먹고 나면 우리가족은 둘러앉아 시조 외우기 놀이를 하거나, 아버지의 하모니카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엄마가 들려주는 그리스신화 이야기에 빠지곤 했습니다. 가난했지만 화목했던 그때의 시조 외우기 놀이가 저를 시인으로 이끌었나 봅니다.

저는 1994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했습니다. 사설학원 국어강사 및 독서논술 강사, 시 읽고 시 쓰기 강사 등으로 오래도록 밥을 벌었습니다. 시집으로 『타오르는 생』, 『물 속 마을』, 『상처가 스민다는 것』, 『그 사이에 대해 생각할 때』와 올해 『검은 잉크로 쓴 분홍』을 출간했습니다. 틈이 생길 때마다 집 주위의 문화답사를 하고 있고, 매일 읽고 매일 쓰고 매일 걷기를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시집 『검은 잉크로 쓴 분홍』을 소개하면?

시집 『검은 잉크로 쓴 분홍』은 숨 돌릴 틈도 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만난 당신과 나의 이야기입니다. 일상은 가벼운 공기처럼 흘러가는 것 같지만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놀라울 만큼 큰 파도가 지나가고 비켜가곤 했습니다. 일상 속의 그 파도를 겪으며 살아내는 당신의 고되고 슬프고 아픈 일을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시로 표현했습니다.

아들에게 우산을 받쳐주느라 몸이 다 젖은 아버지, 비 오는 날이라야 쉬는 엄마의 아픈 허리를 발로 주무르듯 밟아주는 아이의 조심스러운 마음, 하루의 노동일을 마친 사람이 올해 첫 돈이라며 두 손으로 받는 노임, 치매를 앓는 노모가 세상을 향해 종일 한다는 욕, 추어탕 집에서 뜨겁게 넘기는 아린 국물, 홍진 앓는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엄마모습. 도망가는 택시를 잡으러 나온 머리 하얀 어르신들의 웃음 등 세밀하게 관찰하고 안타깝게 바라보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시집을 내게 된 동기와 에피소드

코로나가 왔을 때 잠자던 동생이 일어나지 못한 사건이 있었고, 그 충격으로 부모님이 초기 치매를 앓으셨습니다. 나중에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으나 두어 달 후 돌아가셨지요. 뇌졸중으로 20년 넘게 한쪽 수족을 못 쓰시는 어머니를 간병하다가 요양병원으로 모시고 나니, 5~6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제서야 잠시 저 자신을 바라보고 되돌아보는 시간이 오더군요. 그러나 슬픔에 슬픔을 더했던 날을 지나온 탓에 모든 것을 손놓고 있었습니다. 곁에서, 시인은 시를 써야하고 시집을 내고 또 시를 쓰면서 끝까지 가는 존재이니 시집준비를 하자는 후배의 설득으로 시집을 낼 용기를 얻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200여 편의 시 중에서 가족과 이웃, 나와 당신에 대한 시를 고르고 결이 비슷한 것끼리 묶게 되었습니다.


-시인의 시 창작론은?

시인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날 법하거나 일어날 수밖에 없는 보편적인 우리 삶을 그리는 데 있다, 라고 배웠습니다. 한 편의 시를 읽을 때,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져야 한다고도 배웠지요.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고도 배웠지요. 그래서 시 쓰기는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시가 될 법한 어떤 상황을 만나면 그 상황의 사실을 그대로 보려고 노력합니다. 왜 저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그랬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며 머릿속에서 계속 재현해 보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합니다. 슬픔이나 아픔, 사랑 기쁨 이런 관념어는 스스로 움직이게 동사화 하면서요. 그러면 어느 날 한 편의 시가 써지곤 했습니다.


-시집을 읽으실 분들께 팁이 있다면?

이번 시집 『검은 잉크로 쓴 분홍』에 실린 시는 대부분 일인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 속에서 시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나 시 속의 주인공이 ‘나’로 설정되어 있지요. 그래서 쉽게 읽힙니다. 이런 설정은 마치 나 자신이 직접 겪은 일처럼 느껴지게 하려는 장치입니다. 왜냐하면 이번 시집은 일상생활에 아주 가깝게 밀착된 일들을 썼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아버지를 직접 관찰한 시와 이웃이 겪어내는 일에도 관찰자인 ‘나’가 개입되어 있지요.

시를 읽을 때, 나도 이런 느낌을 받았던 적 있다, 나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나도 이런 슬픔, 고통, 아픔을 겪고 힘들었다는 경험들을 떠올리며 시를 읽어주신다면 시와 가까워지고 감동도 짙어질 것입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소개

결정하기 참 힘듭니다.(웃음) 왜냐면 한 편 한 편의 시는 마치 자식 같아서 다 마음을 울리고 또 그 시에 몰입해 있을 때 마음을 다 쏟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 중 한 편을 소개한다면, 시집의 맨 앞에 있는 「활짝,」을 고르겠습니다. 언젠가 아이가 ‘튼튼’이라는 글을 쌍티읕으로 썼더군요. 우리가족을 위해 일하는 아버지는 더 많이 튼튼해야 한다고요. 그런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그윽한 눈빛과 마음이 전해져서 아버지의 따뜻한 정이 그리워지는 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애착이 가는 시입니다.


바짓단이 다 젖은 아버지가

눈이 까만 아들을 옆구리에 끼고 지하철을 탔다

빗물 흐르는 우산을 발밑으로 내려놓고

휘청거리는 아들을 꼭 껴안는다

아버지를 보며 아들이 활짝, 웃는다

지하철은 쏴아아아아 빗소리를 내며 달린다

우산이 없는 사람들이 비를 생각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골똘해져 있을 때

아버지가 내려놓았던 우산이 활짝, 펴졌다

지하철 인파 속에서도 자동으로

비를 막아주고 있는 아버지의 우산

잔잔한 파도처럼 사람들이 웃고

아버지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우산을 접는다

튼튼한 아버지는 우산처럼 우리를 보호해주십니다,

썼던 어떤 날의 따뜻한 저녁 밥상 속으로

내 마음이 달려가서 활짝, 펴진다

비는 피하지 않고 뚫고 가는 것이라고

우산 속에서 서로 어깨를 겯고

아들 쪽으로 더 깊이 우산을 씌워주는

한쪽 어깨가 다 젖은 아버지의

활짝, 웃는 얼굴이 보인다

- 「활짝,」 전문, 강미정 시집 『검은 잉크로 쓴 분홍』 중에서


-앞으로의 계획

하하, 저는 시인입니다. 그래서 계속 관찰하고 고민하고 느끼며 시를 쓸 것입니다. 여유가 된다면 시집도 계속 묶어낼 것입니다. 시인은 정년퇴임이 없지만 정년퇴임 때까지요. 조금 욕심을 내본다면, 사진과 시를 접목시킨 포토포엠 시집, 디카시집, 제 삶에서 굴곡이 심했고 간절했던 일들을 심리적 철학이 담긴 에세이로 묶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한 편씩 썼던 글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새 것에 대한 변화가 느린 제가 또 좌충우돌하며 매일 쓰고 매일 산책하면서 변화하는 환경 속에 있을 것입니다. 지루할 수도 있는 저의 긴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뷰티라이프> 2024년 7월호, 창간 25주년 기념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