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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뚜레-신휘
글쓴이 : 뷰티라이프 날짜 : 2020-04-24 (금) 10:55 조회 : 435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82)

 
코뚜레
신휘(1970~ )


한 일 년 쇠죽을 잘 끓여 먹이고 나면 아버지는 송아지의 콧살을 뚫어 코뚜레를 꿰었다. 대나무나 대추나무를 깎아 어린 소의 콧구멍에 구멍을 낸 뒤 미리 준비해둔 노간주나무로 바꿔 꿰는 작업이었다.

코뚜레는 단단했고, 어린 소의 코에선 며칠씩이나 선홍빛 피가 흘러내렸다. 소는 이내 아픈 코에 굳은살이 박였는지 오래지 않아 한결 유순하고 의젓한 소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 놈을 몇 달 더 키운 뒤 일소로 밭에 나가 부리거나 제값을 받고 먼 시장에 내어다 파는 것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사납고 무서웠던지, 오십이 다 된 나는 지금까지 코뚜레를 꿰지 못한 어린 소로 살고 있다. 누가 밖에 데려다 일을 시켜도 큰일을 할 자신이 없었거니와, 나 같은 얼치기를 제값 주고 사 갈 위인도 세상엔 없을 것 같았다.

삶이, 그것이 힘들어 앓아눕는 날이 많을수록, 막 코뚜레를 한 어린 소 한 마리 나 대신 엎드려 혼자 울고 있는 모습이 꿈에 자주 보인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82번째 시는 신휘 시인의 “코뚜레”입니다.

지금은 소를 대규모로 키우는 농가가 많지만 필자가 어릴 적만 해도 소는 한 농가에 한 마리, 많은 집이라야 두세 마리밖에 키우지 않았습니다. 소는 그야말로 식구와 진배없었습니다. 동고동락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논, 밭을 간다든지 수레를 끄는 등 힘든 일은 소가 다 했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소는 힘든 일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새끼를 내 잘 키워서 살림 밑천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아들 대학 등록금이라든지 딸내미 시집보낼 때 등 큰돈이 들어갈 때는 여지없이 소를 팔아 충당했습니다.

그런 소이니 귀하게 대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필자는 학교를 파하고 집에 오면 으레 소를 끌고 앞산이나 뒷산으로 올랐습니다. 소위 ‘소 풀 뜯기기’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따뜻한 햇살 아래 산기슭에 누워 책을 읽으며 소일했던, 소 풀 뜯기기는 잊혀 지지 않는 추억 중의 하나입니다.

송아지가 어느 정도 크면 코를 뚫고 코뚜레를 했습니다. 소의 힘을 사람이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코를 뚫었다는 것은 어린 소에서 어른소가 되었다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대신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날과는 이별이었습니다. 당기면 당기는 대로, 끌면 끄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숙명을 코뚜레는 소에게 지워줬습니다.

어린 소가 코뚜레를 통해 어른 소가 되는 것은 성장통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며칠씩이나 선홍빛 피”를 흘리고 “코에 굳은살이 박”힐 때까지 고통을 참아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고통 없는 삶은 없습니다. 그래서 “앓아눕는 날이 많을수록,” “코뚜레를 한 어린 소 한 마리 나 대신 엎드려 혼자 울고 있는 모습이 꿈에 자주 보”이나 봅니다.

시인이 우렁차게(?) 일어나서 코뚜레의 고통을 이겨낸 어미 소같이 뚜벅뚜벅 자기 길을 걸어가길 기대해봅니다. 아니 걸어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0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