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45)
이순 이후
-편지
신현주(1960~ )
혹시 가 닿지 않으면 어쩌나
늦게 가면 어쩌나
빠른 등기로 보내던 우편물들
이젠 그냥 일반 우편물로 보낸다
천천히 가라 바람 따라 가라
애탐도 없이 조바심도 없이
느긋하게 가라 서둘지 말고 가라
가다가 곤하면 좀 쉬었다 가라
설혹 제대로 가 닿지 못한다 한들
그걸 어쩌리
예 아니면 강 건너 어디선가 만나기도 하리
쉬엄쉬엄 가라 드문드문 가라
물결 따라 흘러가라 구름 따라 가라
꽃 피는 일 따라 가라 꽃 지는 일 함께 가라
허수아비 놀며 놀며
느린 모자 쓰고 가라
신현주 시인
서울 출생. 1997년 <녹색평론>에 ‘내 아들의 아들 때에는’ 외 4편을 발표하며 시작 활동. 2021년 첫 시집 <경의선 숲길에서 쓰는 편지> 간행. 현재 용인에서 살며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 중.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이번 달 시는 신현주 시인의 “이순 이후-편지”입니다.
며칠 전, 아내가 텔레비전 속 영화를 보면서 한마디 합니다. ‘나도 지금 저 시절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을 축내지 않고 세상을 재미있게 잘 살 수 있을 텐데...’ ‘정말 그럴까?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이 없었다면, 다시 옛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헤매긴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글쎄 그럴 것 같기도 하고....’
우리는 지나온 세월을 상기하며 많은 대화와 추억을 반추하였습니다.
많지 않은 삶을 살아왔지만 요즘 인생은 소풍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래서 생을 즐기면서 여유를 가지고 만끽하자는 생각도 종종 합니다. 소풍 온 세상, 조급해하지 말고 경치도 즐기며 삶을 여유롭게 만지작거리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마 이런 생각은 “이순 이후”니까 더 간절하고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갓 출간한 시집이나 저서도 “늦게 가면 어쩌”겠으며, “가 닿지 못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의 시집은. 혹은 저서는 이미 나왔고, 누군가는 보고 즐거워하거나 꾸짖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 나이에 그게 무슨 중요한 일이겠습니까. “쉬엄쉬엄” “드문드문 가”다보면 “만나기도 하”고 웃을 수도 있겠지요.
“물결 따라 흘러가”고 “구름 따라 가”면 그리운, 보고싶은, 좋은 일, 아름다운 사람 다 만나겠지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간만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지혜와 여유를 켜켜이 쌓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이 시를 읽으며 하게 됩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5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