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50)
달빛 숨소리
노금희(1953~ )
쫓기는 파도의 하얀 울음소리처럼
철썩철썩 숨 가쁜 물레방아 뒤
살며시 당기는 온화한 손길
뜨거운 거리를 좁히는 가슴속엔
콩콩 뛰는 숨소리가 걸어 나온다
달빛은 늦가을 조밭처럼 일렁이고
바람은 물레방아를 연신 돌리고 있다
담벼락 담쟁이는 처녀 등을 꼭 붙잡고
더벅머리 총각이 입술을 훔친다
시샘하듯 뒷산 뻐꾸기 자지러지고
놀란 초승달은 구름 속으로 숨는다
담쟁이 웃음소리가 뚝 뚝 떨어지는 밤
물레방앗간 달빛 숨소리도 거칠었다
노금희 시인
전북 정읍 출생. 현재 경기도 광주 거주. 한겨레문인협회 이사. 천상병문학제 운영위원. 한반도통일문학상,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 배꼽 빠진 상, 강원경제신문 토지문학 누리달 공모전문학대상 수상 등 다수 수상, 첫시집 <시간을 이기는 어둠은 없다>가 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이번 달 시는 노금희 시인의 시골 청춘남녀의 자연동화 사랑 이야기를 아름답게 담아낸 “달빛 숨소리”입니다.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은 아침 일찍 등교하면서 본, 파란 보리밭의 보리들이 왜 눕혀져 있는지 의아해하면서 자랐을 것입니다. 뿐이겠습니까? 어젯밤 울었던 부엉이 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떨림이 많았고 부자연스러웠습니다. 그 소리에 안절부절못하던 고모는 얼굴이 왜 빨개졌을까요.
“물레방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달빛”이 “늦가을 조밭처럼 일렁이고” “바람은 물레방아를 연신 돌리고 있”으니 처녀 총각이 사랑을 나누기에 최적의 장소가 아닐 수 없지요. “콩콩 뛰는 숨소리가 걸어 나”오지 않는다면 사람도 아닙니다.
또 한 쌍이 있습니다. “담쟁이” 덩굴이 감싸고 있는 “담벼락”에 “처녀”를 밀쳐놓고 “더벅머리 총각이 입술을 훔”치고 있군요.
이럴 땐 하필 “뒷산 뻐꾸기” 소리 “자지러지고” “초승달은 구름 속으로 숨”어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사랑의 잔치판입니다. 이러니 “담쟁이 웃음소리가 뚝 뚝 떨어지”고 “물레방앗간 달빛 숨소리도 거칠”어질 수밖에......
징하고 징한 사랑놀이에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그러나 이런 게 우리네 조상의 순수하고 육감적인 사랑이야기가 아닐런지요.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6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