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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윤희경 시인-
글쓴이 : 뷰티라이프 날짜 : 2026-01-22 (목) 16:25 조회 : 399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51)

 

숨

윤희경(1959~ )

 

비 온 뒤,

텃밭 지렁이들 꿈틀거린다

 

문장도

흙을 캐며 숨을 낸다

 

번쩍이는 호미질 끝에

걸려 나온 놈들

화들짝 더 반갑지

 

마디마다 숨 쉬는 생물

엎드렸다가 길을 낸다

나만의 계보가 시작된다

 

숨결이 닿는 순간마다

흙이 문장을 밀어 올린다

삐뚤삐뚤 글 줄기 사이로

바람 홀로 스쳐 간다

 

꿈이 말했다

닮을수록 더 살아난다고

 

비가 그치면,

텃밭에서도 합창이 떠오른다

그 소리에 뒤뜰이 환해지고

 

소란한 별 조각들로 한바탕

밤을 샌다

 

흙을 젖히며

잠들지 않은

숨 덩어리 건져 올린다

 

 

윤희경 시인

시집 <대티를 솔티라고 불렀다>, 전자시집 <빨간 일기예보> 간행. 2022년 ‘재외동포문학상’, 제10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제9회 ‘해외동주작가상’ 등 수상. 현재 <문학과 시드니> 편집위원.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이번 달 시는 윤희경 시인의 창작의 고통과 환희를 잘 담아낸 시 “숨”입니다.

 

농부가 땅을 일구고 논밭을 경작하여 농작물을 생산하는 것과 시인이 글자를 엮어 언어의 아름다움을 창작하는 행위는 동일한 예술 행위에 다름 아닙니다. 농부가 육체적인 면에 치중한다면 시인은 정신적인 노동에 기중치를 둔다는 것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농부 대신 “지렁이”를 대입해봅니다. 그들도 “꿈틀거”려 “길을” 내고 그들만의 “계보”를 만들어갑니다. 시인이 시를 창작해내듯 “흙”에 “숨결”을 불어넣어 “문장”을 만들고 “바람” 길을 냅니다.

 

이러한 행위는 생명을 창조하는 성스러운 일입니다. “흙을 캐며 숨을” 내고 “문장을 밀어 올”리는 행위가 시인의 창작활동과 어떻게 다르겠습니까.

이러한 행동은 고난이 지나갔을 때 그 빛을 발하게 됩니다. “비가 그치”자 “텃밭에서 합창이 떠오”르고 “뒤뜰이 환해”지는 이유입니다. 결국 “숨 덩어리”라는 아름다운 결과물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창작의 길은 외롭고 고독하고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고난을 수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농부(지렁이)들이 고난을 극복하고 길을 내며 흙을 분해하여 땅을 살찌우듯이 시인(예술가)의 삶도 그런 삶의 연속이 아닐런지요.

 

시인들의 노력의 결실, “소란한 별 조각들로 한바탕// 밤을” 새며 황홀경에 빠지는 날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6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