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53)
일순의 일
김경옥(1962~ )
겨우내 빈 몸이던 나무
가지마다 망울 맺히고
눈 녹은 지푸라기 사이
새순 얼굴 내밀 때
불어온 남풍에
겨드랑이 간지러운
개나리 진달래 목련
잎보다 먼저 필 때
생각한다,
섭리攝理라는 말
피고 지는 것
일순의 일
김경옥 시인
1962년생. 마산여고, 이화여대를 나와 외국계 은행에서 일했다. 재학 중 이화 교지 편집위원, 『이대학보』 현상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었고, 2001년 『시와 시학』 신춘문예에 시 다섯 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계간지 『시작』, 『타자비평』, 『문학의 오늘』 등에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백석대학교 상담대학원을 나와 심리상담사로 활동해왔다. 시집으로 『시끄러운 침묵』 (2026)이 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이번 달 시는 김경옥 시인의 “일순의 일”입니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란 말을 실감하며 사는 요즘입니다. 추위에 움츠려 있다가 때맞추어 나온 햇살을 받으며 성북천을 야금야금 걷습니다. 오리들이 쌍쌍이 즐겁습니다. 해오라기는 작년 겨울부터 요지부동(?)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언제 물고기사냥에 성공할지 마음이 조마조마해집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해오라기가 존경스러워집니다.
성북천 가 모퉁이를 돌자마자 햇살이 유난히 빛나는 곳에서 영춘화가 앞다투어 얼굴을 들이밀고 있습니다. 찬연합니다. 봄이 우리 곁에 다가왔음을 환한 얼굴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봄은 이렇게 시나브로 와서 마음까지 환하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개나리 진달래 목련”은 꽃이 “잎보다 먼저” 핍니다. 그래서 향기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자태를 추위가 가시자마자 보여주고 싶어서 향기까지는 미처 챙기지 못하고 나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잎이 먼저 나오고 꽃이 피는 라일락이라든지 장미를 생각하면 자연의 이치는 이처럼 명확합니다.
“섭리攝理”의 사전적 의미는 ‘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법칙’입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이 “일순의 일”이고, 이는 “섭리攝理”에 해당할지니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북천은 오늘도 그를 찾은 모든 것들을 품고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여울목과 타협하며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자연에 동화되어 황소걸음으로 오시는 봄을 만끽하는 것도 “섭리攝理”이며 “일순의 일”일 것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