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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 공작소-신새벽 시인-
글쓴이 : 뷰티라이프 날짜 : 2026-05-26 (화) 11:28 조회 : 247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55)

 

허세 공작소

신새벽(1961~ )

 

도파민 드레싱*이 유행이라지

 

그 허세를 따라서 즐겨 볼까 하고

과잉된 색으로 치장을 해봐

달에게 초록을 입히고 칠흑 같은 어둠에 짙은 분홍을 칠해

바다는 파란색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야 짙은 노랑은 어떨까

 

서로의 팔짱 낀 색칠놀이 여행

 

싹둑 잘라놓은 레몬의 단면으로 하늘을 메꾸어봐

시큰함이 샤워기처럼 흩뿌려 줄 거야

얼음 심장을 가진 아삭한 호수의 가장자리를 물어뜯고

부서진 해를 주워 담은 캐리어 안에는

점점 색과 색이 부딪히는 충돌로 배가 부풀어 오르지

 

넌 항상 말로만 이렇게 친밀한 듯 다가와

귓가에 속삭이는 개양귀비처럼 붉은 혀를 놀리지

가시를 숨긴 욕망이 나에게 자주 들켜

 

너의 입속에 입이 없는 물고기들을 가득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너와 닮은 그림자들은 수없이 생겨나지

늘 결과는 어처구니가 없고

허튼 문장으로 나를 지치게 만들어

 

오래 가지 않을 너와의 사이에 검은 공백이 짙어지면 곧 삭제될 거야 넌

 

*기분에 따라 옷을 바꿔 입는 행위

 

신새벽 시인

경북 의성 출생. 2017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파랑 아카이브』 『통증처럼 흔들리는 새벽』. 시예술 아카데미상 수상. 빈터문학회 회원, 미루 동인, 한국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산림문학회 회원. 현재 계간 『이음』 편집위원.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이번 달 시는 요즘의 선거철에 잘 어울릴 듯한(?) 신새벽 시인의 “허세 공작소”입니다.

 

출근하는데 봄꽃 터지는 소리보다 더한 소리가 정신을 어지럽게 합니다. 손에 확성기를 들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지하철 역 앞에서 90도로 인사하는 파랑, 빨강, 하얀 색들의 향연이 난무합니다. 버거운 직책들을 잔뜩 새겨논 명함들이 거리 곳곳을 나뒹굽니다. 저런 열정이면 나라도 구할 것 같다는 쓰잘디 없는 생각을 하며 눈을 피합니다.

 

“그 허세를 따라서 즐겨 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들은 선거철만 되면 “항상 말로만 이렇게 친밀한 듯 다가와” “붉은 혀를 놀리지”만 “가시를 숨긴 욕망”을 “나에게 자주 들키”고 맙니다. 그들을 믿은 “결과는 어처구니 없고” “나를 지치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당연히 “곧 삭제될” 그들의 모습을 보며 “허세”를 다시 생각하는 시절입니다.

 

그러나 그 “허세”가 때로는 우리에게 위안을 줄 때도 있습니다. “달에게 초록을 입히고” “어둠에 분홍을 칠”하고 “바다”를 “짙은 노랑”으로 바꾸면 어떨까요? “잘라놓은 레몬의 단면으로 하늘을 메꾸”고 “아삭한 호수의 가장자리를 물어뜯고” “부서진 해를” “캐리어 안에” 주워 담아 놓으면 또 어떨까요.

 

이런 허세는 생각만으로도 우리의 삶을 살찌게 합니다.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이런 “허세 공작소”가 있다면 당장 가동하고 싶어집니다.

현실과 이상의 절묘한 조화, “허세 공작소”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서 피어납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6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