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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노연화 시인-
글쓴이 : 뷰티라이프 날짜 : 2026-09-21 (월) 11:31 조회 : 16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59)

 

장마

노연화(1960~ )

 

장맛비 내리다가 잠시 쉬는 시간

창문 열고 비냄새 마신다

훅 가슴을 떠미는

비릿하고 풋풋한

서늘하고 축축한

나뭇잎에 매달린 물방울 후드득

 

개 삽니다 고양이 삽니다 염소 삽니다

트럭이 한 대 지나가며 외친다

확성기로 울려퍼지는 시골 골목길

개 팔아라 고양이 팔아라

도시의 골목길에서 듣던 소리보다 예의바르다

 

쌀 팔러간다 하며 쌀 사오던 어머니

돈 벌러간다며 돈 쓰고 오시던 아버지

행복해지겠다며 악바리처럼 굴다가

제 욕심에 제가 치어서 불행해질 때

 

행복 팔아라 행복 삽니다

사랑 팔아라 사랑 삽니다

햇빛 팔아라 햇빛 삽니다

하늘에 대고 외쳐봐도

 

다시 쏟아지는 습한 것들

트럭이 멀어지고 빗물이 창을 넘나든다

개 삽니다 고양이 삽니다 염소 삽니다

아득한 소리 꿈속까지 따라온다

 

노연화 시인

2000년 월간 『문예사조』로 문단 데뷔. 한국꽃문학상 수상. 영축문학회, 양산시인협회 회원. 현재 『양산시문학』 편집장. 시집 『사랑 팔아서 햇빛 삽니다』가 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이번 달 시는 장마철의 상념을 잘 빚어낸 노연화 시인의 “장마”입니다.

 

인간만큼 계절이나 날씨의 변화에 민감한 동물은 드물 것입니다. 물론 생태적인 면에서 인간보다 이러한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동물도 있겠지만, 정서적인 면에서는 인간을 따라올 수 없을 것입니다. 날씨의 변화 중에서도 비는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촉매제로써는 최고 중의 하나가 아닐까요. 양철지붕 위를 때리는 소나기 소리는 생각의 깊이를 무한공간으로 넓히는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장맛비 내리다가 잠시 쉬는 시간”은 인식의 깊이와 추억의 확장 면에서 최적의 시간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인식의 깊이와 추억의 확장은 절묘하게 어우러져 새로운 세계로 인도합니다.

 

시골내기들이라면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하나씩은 가지고 성장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쌀 팔러간다 하며 쌀 사오”고 “돈 벌러간다며 돈 쓰고 오”던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해 못할 행동은 제일이었을 것입니다. “쌀 팔아” 온갖 것들을 “사오던 어머니”가 그리운 것은 빗소리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개 삽니다 고양이 삽니다 염소 삽니다”라던 “시골 골목길”의 정겨운 소리는 “개 팔아라 고양이 팔아라”의 “도시의 골목길”의 반말투로 바뀝니다. 그러나 이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행복 팔”면 “행복” 사고, “사랑 팔”면 “사랑” 사고, “햇빛 팔”면 “햇빛” 사고 싶은 현실을 “하늘에 대고 외쳐”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제 욕심에 제가 치여서 불행해”지는 건 아득합니다. 그럴 때 더 생각나는 건 마음의 고향, 어릴 적의 추억입니다. “장맛비”가 기승을 부리다 잠잠해지고 다시 그 기세를 더하면 우리의 생각의 깊이도 더해지고 넓어지겠지요. “꿈속까지 따라”올 지경에 이르니까요.

 

“장맛비”의 상념을 절묘하게 빚어낸 시인의 시가 “장마”의 여운처럼 길게 남는 가을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6년 10월호